직장인 우울증 , 누구를 탓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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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우울증 , 누구를 탓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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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우울증’, 누구를 탓할까
 | 입력 2011.03.01 10:21 | 

 
서울 강북삼성병원 오강섭 정신과 교수가 우울증을 호소하는 직장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직장인들이 직장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초,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 아무개씨(26)가 회사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주요 원인이었다.

'직장인 우울증'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취업 포털 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에는 직장인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44.6%였지만, 2010년에는 77.8%까지 증가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과 직무불안정성의 증가,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무한 경쟁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
국제화에 따른 전통 가치관의 혼란 등으로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의 강도가 심화되면서 우울증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제대학교부속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일본은 지난 10년간 직장인 우울증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연령도 3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우리가 그 비슷한 사회적 환경에 처해 있다"라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우울증은 환경적 요인이 대부분이며, 직무 스트레스에 장기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나타난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는 '직무 스트레스'를 업무상 요구 사항이
근로자의 능력이나 자원, 요구와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유해한 신체적·정서적 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직장인 우울증에 걸리면 일에 대한 흥미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조차 상실할 우려가 크다.

20대까지 호소…연령대 다양해져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명진씨(가명·31)는 최근 부서 이동으로 인해 업무가 바뀌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고, 짜증이 부쩍 늘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윗사람들 눈에는 낙제점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 고과도 좋지 않았다. 연일 야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데 이를 알아 주지 않는 회사와 동료들이 원망스러워졌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평소 앓고 있던 강박증이 더욱 심해졌고 결국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내로라하는 대기업 부장이던 박진규씨(가명·47)는 최근 임원으로 승진했다.
모두가 꿈꾸는 자리에 올랐는데 기쁨은 잠시였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엄습했다. 숨이 막혔다.
임원은 없는 일을 만들어 해야 하는 창의적인 업무가 대부분이어서 기존에 하던 일과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사실상 비정규직 신분이기 때문에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바로 해고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덩달아 찾아왔다.
평소 3~4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일했던 그였는데 이제 3시간마저도 잘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이었다.

이처럼 우울증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40~50대에게 찾아왔던 직장인 우울증이 이제는 20~30대 젊은이들에게도 찾아오고 있다.
박주언 계요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젊은 사람들은 미성숙 우울증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남에게서 찾기 때문에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게 되면 남 탓을 하면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박전문의의 분석이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인해
결국 우울증에 빠진다.
반면 40~50대에 직장인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책임감이 투철하거나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능력자들이 대부분이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것들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우울증에 빠져 든다"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우울증의 또 다른 심각성은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증세가 심각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게 된다는 점에서 일반 우울증에 비해 위험하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일을 하다 보니 바빠서 병원을 잘 찾지 않는다.
그래서 쓰러진다든지, 주위에서 참다못해 병원에 보내는 일이 다반사이다"라고 말했다.
이민성씨(가명·38)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증권가에서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동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승진했고,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일밖에 모르던 그는 가정에 소홀했고, 다시 일에 빠져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결국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에 왔다. 몸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심리 검사를 해보니 심각한 상태의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초기 치료 중요…6개월 이상 꾸준히 받아야

우울증은 대부분의 병처럼 초기 자각 증세가 나타난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이를 세 단계로 구분 짓는다.
첫째, 경고 단계이다. 몸과 마음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둘째, 신호 단계로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  불면증과 원인 모를 불안,  흥미가 떨어지는 등 각종 증상이 나타난다.
셋째, 질병 단계로 병적 우울증이 온다. 성인병과 같은 신체적 질병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온다.
우울증은 개인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외부 시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이 쉽게 나타난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을 경우에도 우울증이 증폭될 수 있다.

우울증은 일단 치료 기간이 중요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경우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
이 기간을 놓치거나 치료가 다 된 것으로 착각하고 치료를 소홀히 하면 오히려 상태가 나빠진다.
우울증이 재발되면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약물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며, 심할 경우에는 입원도 해야 한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이 한 번에 치료되지 않으면 50% 이상 재발된다.
한 번 더 재발되면 75%, 세 번 이상이면 90%가 재발한다.
만성 우울증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라며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을 앓아서 병원에 오게 되면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약물 치료나 광선 치료, 자기장 치료를 통해 뇌를 활성화시켜준다. 동시에 상담 치료를 병행해 우울증을 앓게 된 원인을 찾아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한국직장인지원전문가협회(EAP) 회장인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기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한다. 세상에 자신처럼 귀한 것이 없는데 대다수 사람은 자기를 잘 안 돌본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편해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나간 나는 다시 오지 않는다. 자기가 지금 잘 자고, 잘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젊었을 때부터 나를 관리하고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계요병원 정신과 박주언 전문의는 "회사에서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을 도입해 직장이 개인의 심리 건강을 챙겨줘야 한다.
이것은 복지 차원이 아닌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EAP를 도입한 기업은 공기업 20개, 대기업 80개, 중소기업 5백50개로 전체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회사 우울증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문제여서는 안 된다. 개인, 회사, 사회 공동의 노력을 통해 치유해야만 하는 우리 시대 모두의 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