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일탈은 부모와 애착결핍 탓
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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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10:43
아이 일탈은 부모와 애착결핍 탓 (경향신문)
인간은 왜 술에 중독되는가. 이제마는 이에 대해 “일하기 싫어 술로 도망가는 것”이라 답했다. 즉 술의 중독성 이전에 현실도피라는 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인터넷게임 중독과 도벽으로 내원한 중학생. 방과후에는 친구들과 PC방에서 지낸다.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인터넷만 한다. 최근에는 친구 물건까지 훔쳐 팔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됐다. PC방 친구들에게 게임아이템을 나눠주고 싶어 돈이 필요했다는 아이의 말에는 죄책감이 묻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선생님 보기 창피해서 타이르고 용돈도 올렸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엄마가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아이의 일기장 내용이다.
엄마에 대한 욕설과 극언까지 담겨 있었다. 엄마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그렇다며 학교를 옮길
까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나쁘다면 고쳐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관계’다. 치료의 실마리 역시 부모에게서 찾아야 한다. 아이의 인터넷 중독 원인은 성인들의 알코올 중독이나 마찬가지로 현실도피다. 그 현실이 바로 부모·자식 간의 관계다.
흔히 “인터넷 중독으로 가족간 대화가 단절된다”고 말한다. 또 PC방 출입시간이나 인터넷 사용 제한을 외치고 정부 차원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한다. 몇몇 지자체는 아예 산골에 교육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입소시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뒤바뀐 것이다. 가족갈등의 현실이 아이들을 인터넷으로 도피하게 만든 것이지, 인터넷이 가족관계를 파괴한 것이 아니다. 전국의 PC방을 다 없앤들 부모·자식 간 소통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중독은 멈추지 않는다. 맹목적인 연예인 추종이나 흡연, 음주, 오토바이 폭주 등 다른 중독 대상으로 옮겨간다.
아이의 일탈은 부모와의 애착결핍에서 비롯된다. 헌신적이라 자처하는 엄마는 언제나 모범이라는 틀 속에 아이를 가두려 했을 뿐, 아이와 따뜻한 인격적 유대 형성은 간과했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획일적 지시, 일로 바쁜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애착 형성이 좌절된 것이다.
아이들은 애착을 느끼는 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산다. 나침반 바늘이 북극을 향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따뜻함의 근원을 무의식적으로 찾아간다. 그 근원이 부모가 되면 부모는 양육자이자 인도자로서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 실패하면 180도 달라진다. 부모보다는 또래집단과 애착을 형성하고 또래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마음이 또래에게 가 있으면 아이는 부모의 반대편에 선다. 부모와 닮은 것들은 혐오하고 최대한 부모와 달라지고 싶어 한다. 부모는 심지어 증오의 대상이 된다.
상담치료를 통해 모성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함께 병원으로 오게 해 주 2회 이상 아이와 인터넷 게임을 함께하도록 설득했다. 인터넷 사용에 대한 자제력을 키워주고,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한 처방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의 문제점만을 찾기에 급급해한다. 그제야 아이들에게 “대화 좀 하자, 뭐가 문제냐, 원하는 게 뭐냐”고 다그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일상의 소소한 대화와 소통으로 신뢰와 친밀감이 형성돼야, 아이가 부모를 조언자로 받아들이고 그제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은 왜 술에 중독되는가. 이제마는 이에 대해 “일하기 싫어 술로 도망가는 것”이라 답했다. 즉 술의 중독성 이전에 현실도피라는 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인터넷게임 중독과 도벽으로 내원한 중학생. 방과후에는 친구들과 PC방에서 지낸다.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인터넷만 한다. 최근에는 친구 물건까지 훔쳐 팔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됐다. PC방 친구들에게 게임아이템을 나눠주고 싶어 돈이 필요했다는 아이의 말에는 죄책감이 묻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선생님 보기 창피해서 타이르고 용돈도 올렸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엄마가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아이의 일기장 내용이다.
엄마에 대한 욕설과 극언까지 담겨 있었다. 엄마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그렇다며 학교를 옮길
까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나쁘다면 고쳐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관계’다. 치료의 실마리 역시 부모에게서 찾아야 한다. 아이의 인터넷 중독 원인은 성인들의 알코올 중독이나 마찬가지로 현실도피다. 그 현실이 바로 부모·자식 간의 관계다.
흔히 “인터넷 중독으로 가족간 대화가 단절된다”고 말한다. 또 PC방 출입시간이나 인터넷 사용 제한을 외치고 정부 차원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한다. 몇몇 지자체는 아예 산골에 교육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입소시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뒤바뀐 것이다. 가족갈등의 현실이 아이들을 인터넷으로 도피하게 만든 것이지, 인터넷이 가족관계를 파괴한 것이 아니다. 전국의 PC방을 다 없앤들 부모·자식 간 소통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중독은 멈추지 않는다. 맹목적인 연예인 추종이나 흡연, 음주, 오토바이 폭주 등 다른 중독 대상으로 옮겨간다.
아이의 일탈은 부모와의 애착결핍에서 비롯된다. 헌신적이라 자처하는 엄마는 언제나 모범이라는 틀 속에 아이를 가두려 했을 뿐, 아이와 따뜻한 인격적 유대 형성은 간과했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획일적 지시, 일로 바쁜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애착 형성이 좌절된 것이다.
아이들은 애착을 느끼는 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산다. 나침반 바늘이 북극을 향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따뜻함의 근원을 무의식적으로 찾아간다. 그 근원이 부모가 되면 부모는 양육자이자 인도자로서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 실패하면 180도 달라진다. 부모보다는 또래집단과 애착을 형성하고 또래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마음이 또래에게 가 있으면 아이는 부모의 반대편에 선다. 부모와 닮은 것들은 혐오하고 최대한 부모와 달라지고 싶어 한다. 부모는 심지어 증오의 대상이 된다.
상담치료를 통해 모성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함께 병원으로 오게 해 주 2회 이상 아이와 인터넷 게임을 함께하도록 설득했다. 인터넷 사용에 대한 자제력을 키워주고,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한 처방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의 문제점만을 찾기에 급급해한다. 그제야 아이들에게 “대화 좀 하자, 뭐가 문제냐, 원하는 게 뭐냐”고 다그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일상의 소소한 대화와 소통으로 신뢰와 친밀감이 형성돼야, 아이가 부모를 조언자로 받아들이고 그제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