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엄친아 죽음으로 내모는 '1등 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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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0 07:12
엄친아 죽음으로 내모는 '1등 컴플렉스'
[동아일보] 2013.4.10
자타공인 모범생이다. 별명은 '점 일'. 성적이 전국 0.1% 안에 들 만큼 우수하다는 이유로 몇몇 친구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용돈 걱정?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하얀 피부에 갸름한 턱선. 귀공자 같은 외모에 반한 여학생만 여럿이다.
요즘은 손이 덜덜 떨린다고 했다. 봄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지만 한겨울 추위보다는 덜하다. 그런데 왜 손을 덜덜 떨까? 누가 봐도 '엄친아'인 조민성(가명·고2) 군 이야기다.
○ 벼랑 끝에 선 모범생
언제나 손을 떠는 건 아니다. 누가 그의 별명을 부를 때만 그렇다. 특정 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인 셈. 이젠 일부 교사까지 그렇게 부른다. 어느 순간부터 별명이 부담됐다. 가뜩이나 잠을 잘 못잘 만큼 공부 스트레스가 심한데 별명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웠단다. 그러다 조금씩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 군은 말했다. "가끔 복도에서 경쟁자를 만나면 전부 사고를 당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쩔 땐 나 자신이 무서워요. 힘들죠. 근데 불안해서 공부는 손에서 못 놓겠어요. 자존심 때문에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겠고…."
이런 증상은 모범생의 '1등 콤플렉스'다. 성적과 외모와 가정환경. 어느 하나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훨씬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점을 의식하다 보니 언제나 최상의 성적과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생긴다. 1등 콤플렉스를 견디지 못한 청소년은 위기에 빠진다.
지난달 경북 지역 명문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던 권모 군(고2)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교 1등이던 학생. 학교 폭력을 당한 적도, 우울증 증세도 없었다.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더이상 못 버티겠어요." 경찰은 성적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살 사유로 추정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도 고3 김모 군이 얼마 전에 목숨을 끊었다. 그 역시 평소에 사고 한번 친 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2년 전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른 고교생도 마찬가지. 항상 1등이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분신 직전 주변에 이렇게 말한 걸로 알려졌다. "부모님이 나를 보살펴 주는 것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없어."
○ 엄친아 신드롬, 1등 콤플렉스에 불 질러
기자는 학급성적이 상위 10% 안에 든다고 밝힌 서울 강동·송파 지역 고교생 100명에게 물었다. 얼마나 행복한지.
남보다 불행하다고 답한 학생이 57명이었다. 비슷하다는 응답은 33명, 더 행복하다는 응답은 10명에 그쳤다. 100명 중 6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밝혔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는 △주변의 기대감(41%) △공부 스트레스(22%) △교우 관계(20%)를 꼽았다.
1등 콤플렉스가 최근에 특히 심각해진 이유로는 '엄친아 신드롬'이 꼽힌다.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좋은 성적에 경제력, 외모까지 모두 갖춰야 진정한 엄친아로 불린다. 이런 분위기가 우등생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설명이다.
한숨 돌릴 만한 틈조차 없는 환경 역시 문제. 교육연구정보원의 이유진 전문상담원은 "요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는다. 특히 꽉 짜인 스케줄에 둘러싸인 모범생은 스트레스를 풀 곳도, 푸는 방법도 몰라 더 문제"라고 했다.
모범생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크다. 스스로에 대해 지나칠 만큼 완벽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들은 자존감은 엄청나지만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심리적인 탄력성'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벼랑 끝에 서있듯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고 설명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동아일보] 2013.4.10
자타공인 모범생이다. 별명은 '점 일'. 성적이 전국 0.1% 안에 들 만큼 우수하다는 이유로 몇몇 친구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용돈 걱정?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하얀 피부에 갸름한 턱선. 귀공자 같은 외모에 반한 여학생만 여럿이다.
요즘은 손이 덜덜 떨린다고 했다. 봄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지만 한겨울 추위보다는 덜하다. 그런데 왜 손을 덜덜 떨까? 누가 봐도 '엄친아'인 조민성(가명·고2) 군 이야기다.
○ 벼랑 끝에 선 모범생
언제나 손을 떠는 건 아니다. 누가 그의 별명을 부를 때만 그렇다. 특정 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인 셈. 이젠 일부 교사까지 그렇게 부른다. 어느 순간부터 별명이 부담됐다. 가뜩이나 잠을 잘 못잘 만큼 공부 스트레스가 심한데 별명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웠단다. 그러다 조금씩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 군은 말했다. "가끔 복도에서 경쟁자를 만나면 전부 사고를 당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쩔 땐 나 자신이 무서워요. 힘들죠. 근데 불안해서 공부는 손에서 못 놓겠어요. 자존심 때문에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겠고…."
이런 증상은 모범생의 '1등 콤플렉스'다. 성적과 외모와 가정환경. 어느 하나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훨씬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점을 의식하다 보니 언제나 최상의 성적과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생긴다. 1등 콤플렉스를 견디지 못한 청소년은 위기에 빠진다.
지난달 경북 지역 명문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던 권모 군(고2)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교 1등이던 학생. 학교 폭력을 당한 적도, 우울증 증세도 없었다.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더이상 못 버티겠어요." 경찰은 성적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살 사유로 추정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도 고3 김모 군이 얼마 전에 목숨을 끊었다. 그 역시 평소에 사고 한번 친 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2년 전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른 고교생도 마찬가지. 항상 1등이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분신 직전 주변에 이렇게 말한 걸로 알려졌다. "부모님이 나를 보살펴 주는 것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없어."
○ 엄친아 신드롬, 1등 콤플렉스에 불 질러
기자는 학급성적이 상위 10% 안에 든다고 밝힌 서울 강동·송파 지역 고교생 100명에게 물었다. 얼마나 행복한지.
남보다 불행하다고 답한 학생이 57명이었다. 비슷하다는 응답은 33명, 더 행복하다는 응답은 10명에 그쳤다. 100명 중 6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밝혔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는 △주변의 기대감(41%) △공부 스트레스(22%) △교우 관계(20%)를 꼽았다.
1등 콤플렉스가 최근에 특히 심각해진 이유로는 '엄친아 신드롬'이 꼽힌다.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좋은 성적에 경제력, 외모까지 모두 갖춰야 진정한 엄친아로 불린다. 이런 분위기가 우등생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설명이다.
한숨 돌릴 만한 틈조차 없는 환경 역시 문제. 교육연구정보원의 이유진 전문상담원은 "요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는다. 특히 꽉 짜인 스케줄에 둘러싸인 모범생은 스트레스를 풀 곳도, 푸는 방법도 몰라 더 문제"라고 했다.
모범생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크다. 스스로에 대해 지나칠 만큼 완벽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들은 자존감은 엄청나지만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심리적인 탄력성'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벼랑 끝에 서있듯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고 설명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